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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호두기름과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 "그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호두기름 이용대목)
작성자 지**** (ip:)
  • 작성일 2015-01-29 17: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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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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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6개월된 갓난 아기에게 호두기름을 먹여도 되는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도 경험이 없는데다, 갓난아기에게는 뭐든지 조심스러운지라...딱부러지게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근데 갑자기...예전에 읽었던 박완서 선생님께서 쓰신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한부분이 떠올라서

옮겨옵니다.  제가 알고있는 최연소 호두기름 이용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소설은 박완서 선생님이 6.25 와중에 인민위원회로부터 올케와 함께 북으로 가라는 협박을 받고 파주 인근을 지나다가

한 집에 잠시 기거하면서 있었던 내용을 적은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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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현이는 온종일 올케 등에서 기침을 해 댔다. 기침을 하다하다 등에다 게울 적도 있었다. 토한 걸 닦아 주려고 처네 위에 덧씌운 솜포대기를 들춰 보면 불화로 같은 고열이 느껴져 가슴이 내려앉곤 했다. 그래도 올케는 쉴 집을 가까운데서 잡으려 들지 않고 점점 더 험한 산골짜기로만 파고들었다.


"이러다 산중에서 날 저물면 어쩔려구 그래요?"
"예로부터 농사 고장이예요. 산이 깊어 봤댔자 호랑이야 나오겠어요?"
내가 겁을 내는 눈치를 보이자 올케는 이렇게 일소에 부쳤다. 꽤 험한 산중이다 싶은 데까지 이르러 작은 동네가 나타났다. 산골 마을답게 들에 편안히 자리잡지 못하고 오르막길과 층계밭을 낀 남향받이였다.


그러나 분지 형태의 꽤 넓은 논을 거느리고 있어서 빈궁해 보이진 않았다. 지대가 가장 높은 곳에 기와집이 한 채있고 그 밖에 열 채 남짓한 집들은 다 초가였다. 이런 마을조차 폭격 맞은 자리가 옹기종기한 마을의 형태를 이지러트리고 있었고, 집들도 거의 비어 있는 것 같았다. 올케는 나더러는 잠시 밖에 머물러 있으라 하고 혼자서 애를 업은 채 제일 꼭대기에 있는 기와집으로 들어갔다. 파주군 탄현면 제3 인민위원회 간판이 붙어 있었다. 올케가 돌아 나와 오늘은 이 집에 묵기로 했다고 했다.


"하필 왜 인민위원회에서 묵어요?"
나는 올케 귀에다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신임장 뒀다 뭘 해요. 아까워서 한번 써먹어 봤어요."
올케는 웃지도 않고 이렇게 말하고는, 인민위원회는 사랑채에 있고 안채엔 주인 할머니가 한 분 남아 계신데 정정하고 화통한 분 같아 마음에 들더라고 덧붙였다.


북쪽으로 가는 중인데 어린것이 아파서 며칠 머물고 싶다고 인민위원회에 도움을 청한 모양이었다. 시골은 어수룩한 데가 있어서 우리가 가진 증명서를 보더니 당원 가족쯤 되는 줄 아는지 쩔쩔매면서 서울 쪽의 형편을 이것저것 알고 싶어했다. 몇 명 안 되는 중년 남자들은 무슨 일을 한다기보다는 서로 의지하려고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간판만 그렇게 붙여 놓았다 뿐 상부와의 연락은 이미 끊어진 상태가 아닌가 싶게 불안하고 줏대라곤 없어 보였다.


주인마님은 올케가 말한 대로 기운차고도 당당해 보였다. 이 난리통에도 부리는 사람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마님 시중을 드는 행랑 할멈이 훨씬 더 추비하게 늙어 가지고 기역자로 굽은 허리로 기어다니다시피 하는 게 명색이 인공 치하인데 어떻게 저런 주종 관계가 가능한지 신기했다. 신임장을 이용해서 인민위원회로 하여금 마님에게 우리의 숙식을 부탁하도록 한 이상 식권도 떼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마님의 태도가 하도 대범하고 권위 있어 보여서 당분간은 눈치만 보기로 했다.

 

마님은 올케가 현이 기저귀를 갈아 주고, 젖을 물리는 걸 보고도 그놈 잘 생겼단 말 한마디를 안 하고 무슨 물건 보듯 했다.
그러나 현이가 기침을 몹시 하느라 애써 먹은 젖을 다 토하는 걸 보더니 벽장에서 호두를 두어 알 꺼내 할멈에게 내주며 호두기름을 내 먹이라고 했다.

할멈은 말없이 윗목에 있는 다듬잇돌 위에서 방망이로 호두를 깨트려 가지고 부엌으로 나갔다. 나는 부엌으로 따라나가면서 할멈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곡식을 밥짓는 데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할멈은 호두 속을 도마 위에서 칼자루로 대강 부수면서 우린 그렇게 인심사나운 집 아니라고 했다. 나는 할멈이 이 집을 대표해서 우리라는 말을 쓸 자격이 있는지 의아하게 여기면서 엉거주춤하고 있었다. 무쇠솥에서 누르스름한 기장조를 넉넉히 얹은 밥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뜸들기 전에, 할멈은 작은 종지에다 잘게 부순 호두 속을 담아서 그 위에 얹었다.


밥이 다 된 후에 쪄낸 호두를 베보자기로 짜니까 작은 술로 한 숟갈쯤 되는 맑은 기름이 나왔다. 많이 해 본 솜씨였다.

"잠들기 전에 먹여. 양약처럼 뚝 그치게 할 순 없어도 기침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질 테니까. 어린 게 말을 못 해 그렇지 목구멍이 얼마나 아플까. 아마 갈라지게 아플 거구먼. 쯧쯧, 세상 잘못 만나... ..."

마님이 말끝을 흐렸다. 곰살궂진 않지만 인정스러운 데는 있는 마님이었다.
그러나 마님은 안방에서 독상을 받으면서 우리는 행랑채에서 할멈과 같이 먹도록 해서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잠도 행랑방에서 할멈하고 같이 잤다. 도배장판이 깨끗한 방이 여기저기 비어 있는데도 군불 넣고 자란 소리를 안 했다. 비록 빈 집털이를 해서일망정 우리 힘으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얼마나 마음 편한지 몰랐다.

그러나 올케는 아이가 아프고부터 부쩍 사람을 의지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런 불평이 조금도 없었다. 호두기름의 효험이 당장 나타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현이는 밤에도 기침을 계속 했고 열도 내리는 것 같지 않았다. 좀 어때요? 불덩어리예요. 올케하고 잠결에 이런 소리를 주고받은 것 같았지만 나는 곤죽 같은 잠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밤 사이에 눈이 퀭해진 올케는 아침에 현이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가 공손하게 아침 문안을 드리고 나서 조금도 아이를 귀여워할 것 같지 않은 마님에게 염치 불구하고 현이를 들이댔다.


"할머님께서 염려해 주신 덕택에 기침소리는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만 몸이 이렇게 펄펄 끓으니 어쩝니까? 폐렴이라도 되는 게 아닐까요."

할머니는 마지못해 아이 머리를 짚어 보더니, 감기 촉상이구먼, 하고 진단을 내렸다. 노회한 의학박사보다 더 무표정하고 단정적이었다. 우리는 그게 폐렴보다는 나은 것인지 더 나쁜 것인지 알길이 없는 채로 마님의 무표정을 공구하며 우러렀다.

마님을 믿어서라기보다는 딴 방도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마님은 벽장에서 또 호두 두 알과 한지에 꼬깃꼬깃 싼 걸 꺼냈다. 한지를 비틀어 오므린 봉지 안엔 빨간 물감 같은 게 한 숟갈 가량 들어 있었다. 마님은 그 중에서 꼭 귀지개로 하나 정도를 놋숟갈 위에다 덜어 냈다. 그렇게 점잖고 무뚝뚝한 마님이 그 약을 다루는 태동에 있어서만은 아까워서 발발 떨고 있다는 것을 해도 알 수가 있었다. 그게 오히려 그 약의 신비함을 더해 주어 우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보았다.

"진짜 영사야, 귀한 거야. 물에 타서 먹여 봐."
올케가 그 약을 받들어 미지근한 물에 타서 현이 입에 부으려고 하자 마님이 달려들어 거들었다. 마님은 한 손으로 현이의 양볼을 꽉 눌러 입을 벌리도록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코를 쥐었다. 숨이 막힌 아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우는 사이로 숟갈을 깊이 처넣으니 약물이 한 방울도 흐르지 않고 꼴깍 넘어갔다. 시골서 어른들이 그런 방법으로 갓난아기들도 쓴 한약을 잘 넘기게 하는 걸 보았건만 마님이 그래 주는 건 되게 고마웠다. 올케는 마치 이런 고귀한 분이 어떻게 우리 같은 천한 것의 몸을 만졌을까 싶은 얼굴을 하고 쩔쩔맸다. 실상 우리의 처지도 그랬지만 하고 있는 꼴이라는 것도 그런 자기 비하를 할 만했다.
"경기는 안 할 거야."

마님은 무뚝뚝하게 말하고 이내 무관심해졌다. 경기(驚氣)는 안 할 거란 소리가 무슨 뜻인지,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는 뜻인지, 경기만은 안 하도록 했다는 뜻인지 궁금했지만, 우리는 큰 병원에 왔을 때처럼 괜히 주눅이 들어서 물어 볼 수가 없었다. 호두기름도 할멈이 정성껏 해 줘서 계속해서 먹일 수가 있었다. 영사를 먹인 날부터 내린 현이 열은 다시 오르지 않았다. 기침은 뚝 그치지는 않았지만 호두기름 덕분에 소리가 한결 유해져서 듣기가 덜 괴로웠다.

첨부파일 2011-11-02_09.35.5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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